p146
제5장-두려움과 자신감
두려움은 파괴나 고통을 야기할 임박한 위험을 생각할 때 느끼는 일종의 고통 또는 불안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해악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나 고통을 야기할 해악만 두려워하니까.
이를테면 우리는 불의해지거나 아둔해지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지만, 큰 고통이나 파괴를 야기할 해악이 멀리 있지 않고 임박한 것처럼 보일 때만 두려워한다. 우리는 아주 멀리 있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불의를 행한 자들도 힘이 있을 때는 두렵다. 그런 자들은 복수당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행한 불의를 당한 자들과 우리의 적이나 경쟁자 중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이들은 성급하고 노골적인 자들이 아니라, 온유하고 시치미 잘 떼고 무슨 짓이든 하는 자들이다. 그들이 행동하려는 때가 임박했는지 알 수 없기에 그들이 멀리 떨어져 있어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없기 떄문이다.
자신감은 우리를 구원해주는 것은 가까이 있고 두려운 것은 없거나 멀리 있다는 생각에 따르는 기대이다.
우리는 종종 성공을 거두었고 실패한 적이 없다고 믿거나 종종 위험에 직면했으나 거기에서 벗어났다고 믿을 떄 자신감이 생긴다.(...) 이를테면 해난 사고 때 미래의 일에 자신감을 갖는 자는 폭풍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자와 경험을 통해 대비책을 세워둔 자이다.
어떤 일에 대해 아예 모르거나 아주 잘 알아야 자신감이 생긴다.
p151
제6장-수치심
수치심은 불명예를 안겨울 성싶은 과거, 현재, 또는 미래의 비행과 관련된 일종의 고통 또는 불안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우리는 실천적 지혜를 가진 사람들, 이를테면 연장자나 잘 교육받은 사람들의 의견을 진실이라고 여긴다. 또한 우리는 만인의 눈앞에서 공개적으로 행해진 것에 더 수치심을 느낀다. 그래서 "수치심은 눈 안에 있다"는 속담이 생긴 것이다.
사피엔스에겐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
제7장-호의
호의는 대가를 바라거나 도움 주는 자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도움 받는 자를 위해 그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호의가 결여됐다는 증거로 우리는 그들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더 작은 도움도 주지 않았지만 그의 적에게는 같은 또는 대등한 또는 더 큰 도움을 베풀었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제8장-연민
연민은 그런 일을 당할 만하지 않은 사람이 치명적이거나 고통스러운 변고를 당하는 것을 보고 느끼는 고통의 감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텐데, 그 변고는 연민의 정을 느끼는 사람이 볼 때 자신이나 자신의 친구 중 한 명이 머지않아 당할 법한 그런 것이어야 한다.
비슷한 뜻으로 알았던 연민과 동정은 동의어가 아니었다.
연민은 나와 남이 동등하다고 여길 때 느끼는 고통의 감정이지만
동정은 내가 남보다 나은 처지-우월하다-라는 의식에서 나오는 감정이다.
니체가 동정이란 감정을 매우 비판했다고 한다.
p163
제9장-분개
연민에 가장 대립되는 것이 바로 분개라는 감정이다. 부당한 행운을 보고 괴로워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부당한 불운을 보고 괴로워하는 것과 상반되지만 같은 감정에서 비롯된다.
두 감정 모두 훌륭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부당하게 고통 받는 자들을 동정하고 연민하되 부당하게 번영하는 자들에게는 분개하는 것이 우리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은 불의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분개를 신들에 속하는 것으로 여긴다.(네메시스(nemesis: 응보)라는 명사는 나중에 인간의 오만을 벌하는 여신의 이름이 되었다)
시기 역시 남이 잘되는 것을 보고 배 아파하는 것이지만, 그럴 자격이 없는 자가 아니라 우리와 대등하거나 같은 자들이 잘되는 것을 보고 배 아파하는 것이니까.
부와 권력, 한마디로 훌륭한 사람과 좋은 가문이나 미모 따위의 이점을 타고난 사람만이 누릴 자격이 있는 그런 것에 분개한다. (...) 벼락부자가 오래된 세습 부자보다 약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 그 이유는 오래된 부자는 제 것을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벼락부자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p.166
우리가 분개하기 쉬운 때는
첫째, 우리가 가장 큰 이점을 누릴 자격이 있고 또 그런 것을 얻었을 때이다. 우리만 못한 자들이 똑같은 이점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옳지 못하니까.
둘째, 우리가 실제로 훌륭하고 정직한 사람일 때이다. 우리의 판단은 건전하고 불의를 미워할 테니까. 또한 우리가 야망이 많고 어떤 관직을 열망할 때, 특히 남이 자격도 없이 점유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열망할 때이다. 대체로 말해서 남은 어떤 이점을 누릴 자격이 없지만 우리 자신은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그런 이점 때문에 남에게 분개한다. 그래서 노예근성이 있고 보잘것없고 야망이 없는 사람들은 분개하지 않는다. 그들이 스스로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곤 없기 때문이다.
'분개' 부분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선민의식이 드러난다.
오랫동안 가문을 유지해온 사람들은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으며 자격 없는 자, 이를테면 벼락부자가 그것을 노리는 것은 분개할 일이다...와 같은 내용을 보니 당시 귀족사회의 철저한 위계질서가 엿보인다.
지금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렇게 얘기한다면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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