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73
바이올린 소리에는 - 만일 악기를 보면서 그 음을 꾸미는 이미지와 소리를 연결하지만 않는다면 - 콘트랄토로 노래를 부르는 어떤 목소리와 매우 비슷한 억양이 있어...
때로는 흔들리는 마술 지혜 상자 밑바닥에서 마치 성수반에 빠진 악마처럼 포로가 된 정령이 몸부림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때로는 한 초자연적인 순수한 존재가 허공에다 눈에 보이지 않는 메시지를 펼치며 지나가는 것 같다.
연주자들은 소악절을 연주한다기보다는 악절이 출현하기 위해 요구하는 의식을 거행하는 것처럼 보였고, 또는 혼을 불러내는 기적을 실현하고 잠시 그 기적을 연장하기에 필요한 주문을 읊조리는 듯 보여 스완은 마치 악절이 자외선의 세계에 속하기라도 한 것처럼, 더 이상 그것을 볼 수 없었다. 그러다 악절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자 일시적으로 실명한 듯, 그 안에서 변신의 신선함을 맛보았다.
악절은 예전처럼 오데트와 자기를 알지 못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았다. 그 악절은 그렇듯 자주 그들 기쁨의 증인이었으니까! 사실 소악절은 그러한 기쁨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 이미 여러 번 경고해 주었다. 그 무렵에는 악절의 미소나 마법에서 꺠어난 투명한 억양 속에도 고통이 어렸음을 간파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거의 즐거운 체념이라 할 수 있는 우아함을 발견했다.
p277
음악가에게 열린 영역은 일곱 음의 초라한 건반이 아니라, 아직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무한한 건반이라는 것을, 그리고 건반을 구성하는 애정, 정열, 용기, 평정의 수백 만 건반 중 단지 몇 개만이, 여기저기 아직 탐색되지 않은 채 짙은 어둠 탓에 분리되어서는, 하나의 우주가 다른 우주와 구별되듯 각각 서로 다른 모습으로 몇몇 위대한 예술가들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이 찾아낸 주제에 상응하는 감동을 우히 마음속에 일깨우고, 우리 영혼이 허무나 무(무)로 여길 그 침투할 수 없는 절망적인 거대한 어둠 속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풍요로움이, 다양성이 감추어져 있는지 보여주는 데 기여한다.
예술은, 진리는, 천재적인 인간에 의해 발견되는 것인가.
탐색되지 않은 이 무한한 우주공간에서 나의 영혼 또한 한줄기 진리의 빛을 발견해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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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소나타 악절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은 스완의 생각은 잘못되지 않았다. 물론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악절은 인간적이었지만, 초자연적인 존재들의 세계에도 속했다.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그럼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탐색자가 이 성스러운 세계에 접근하여 그중 하나를 사로잡아서는 잠시 지상에서 빛나게 할 때면, 우리는 그것을 알아보고 매혹되는 법이다. 이것이 바로 뱅퇴유가 소악절을 통해 이룬 것이었다. 스완은 작곡가가 악기로 소악절의 베일을 벗겨 우리 눈에 보이게 하고, 아주 부드럽고 조심스럽고 섬세하고 확실한 손길로 악절의 데생을 좇고 존중하는 데 만족함으로써, 음이 매순간 끊임없이 변조되어 어떤 음영을 나타내려고 할 때는 희미해졌다가, 또 어떤 대담한 윤곽을 좇아야 할 떄는 다시 활기를 띠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스완이 악절의 실게 존재를 믿은 것이 잘못이 아니라는 또 다른 증거는 만일 뱅퇴유가 사물을 보고 거기에 형태를 부여하는 데 힘이 부족해서, 이런 시각의 결핍이나 손길의 결함을 감추려고 여기저기 가공되지 않은 요소들을 덧붙였다면, 그런 속임수는 조금이라도 섬세한 음악 애호가라면 누구나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악장의 시작 부분에서 스완이 들은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대화는, 인간의 말을 없애면 환상이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피아노의 외침이 얼마나 갑작스러웠던지 바이올리니스트는 그 소리를 붙잡기 위해 활에 달려들어야 할 정도였다.
새는 이미 바이올리니스트의 영혼에 뛰어들었고, 이미 환기된 소악절은 바이올리니스트의 '신들린' 몸을 마치 영매인 양 흔들었다.
소악절이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허공에 매달려 꼼짝하지 않은 채 아주 짧은 순간 연주되다가 곧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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