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작가 조르조 바사니의 <금테안경>은 200페이지 정도의 비교적 짧지만 강렬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이탈리아의 줄리아노 몬탈도 감독에 의해 1987년에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파시즘의 광풍이 서서히 몰아치던 시기를 배경으로 유태인인 주인공의 불안과 고독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실제로 작가 조르조 바사니는 이탈리아에 살던 부르주아 계층의 유태인 출신으로, 자신의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시선으로 파시즘 시대의 광기를 담담하고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한다.
주인공 '파디가티'는 명망있는 중년의 독신남 의사이자 작은 마을의 유명인사였다.
분명 그에게는 뭔가 단번에 사람을 매료하고 안심시키는 면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말 많은 동네에서 매력있는 의사가 혼자 산다는 것은 늘 세간의 관심을 끄는 일이었나 보다.
하지만 파디가티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난 후 마을 사람들은 그에 대한 존경심을 거두어들이고 더이상 그의 존재에 대해 관심갖지 않는다.
안다는 것은 이해하는 것, 더는 궁금해하지 않는 것, '내버려두는 것'과 같았다.
요컨대 그는 경솔하지도, 성가시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그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그는 차츰차츰 객석 나무 의자의 팔분의 일도 안 되는 면적만을 차지할 정도로 몸을 더욱더 움츠려갔으며, 우리 대부분은 그럴 마음이 없었지만 서서히 그에 대한 존경심을 잃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또다시 일을 그르친 것은 그 자신이었다. 어느 아침 기차가 산피에트로인카잘레 역에 정차했을 때 그는 갑자기 우리가 늘 먹던 파니니와 비스킷을 사러 직접 다녀오겠다고 나섰다. '이제 내 차례야'라고 선언하는 그를 만류할 방법은 없었다.
그들은 잔인하리만치 파디가티에게 무례하게 굴었다. 하지만 파디가티는 니노와 델릴리에르스가 무례하게 굴수록 더욱더 친절하게 대하려는 헛된 시도에 매달렸다.
파디가티는 '나'의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며 그들 중 매력이 넘치지만 오만불손한 델릴리에르스와 아슬아슬한 연인관계를 이어간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 관계는 파디가티를 너무나 비굴하게 만들어 버릴 뿐이었다.
결국, 세상은 파디가티를 등지고 그의 존재를 서서히 잊는다.
어느날 우연히 길에서 '나'를 만나게 된 파디가티는 들뜬 마음으로 '나'와 다시 만날 약속을 하기 위해 전화를 한다. 파디가티는 이유 모를 아쉬움에 쉽게 전화기를 내려놓지 못한다. 어쩌면 수화기 너머에서 전해오는 관계의 소원함에서 오는 서늘한 감정이 그의 뼈속 깊은 곳을 때렸는지도 모르겠다.
"안녕, 내 소중한 친구......잘 지내"
그는 뭉클한 마음에 수화기를 쉽게 놓지못했다.
"행운을 빌어. 너와 네 가족의......"
'나'는 그 약속을 잊고 만다.
'나'가 파디가티와의 약속을 어긴 것은 고의가 아니라 순전히 건망증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귀찮기도 했었다. 다른 할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잊었던 것이다...
약속이 있던 다음 날 지역신문에는 파디가티의 자살소식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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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명성이 사라지자 파디가티는 끊임없이 그의 곁에 함께 할 사람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이전에 그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벌레보듯 피하고
고독한 그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천천히 사회로부터 배제되어가던 파디가티.
자신감 넘치던 그가 그보다 한참 어린 델릴리에르스의 노골적인 적대감에도 한마디 대적하지 못하고 점점 무너져간다.
'나' 역시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는 사람들 속에서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다.
파디가티도 '나'도 '그들'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동류인 사람들로부터 배제된 인간형인 것이다.
이 소설은 배제된 인간의 숨길 수 없는 두려움과 그에 상응하는 혐오를 드러내고
불가항력의 거대한 위협에 무기력해지는 개인의 억눌린 분노와
영원히 해결될 것 같지 않는 개인의 아픔을 드러내고 전시한다.
사회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사람이 모인 곳, 그 안에서 통용되는 보편의 상식을 벗어날 때
사람들은 대부분 다수의 편에 선다.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다.
흐름을 거스른다는 것은 커다란 힘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므로
옳고 그름에 대한 확신이 없는 한, 보통의 인간들은 그냥 흐름에 자신을 맡기게 된다.
그 옳고 그름을 누가 정의한단 말인가.
태극기부대가 다수라면 나는 그들을 따를 것인가.
한 사회의 방향을 정하는 일은 그래서 너무나 중요한 일이며
사명을 가지고 함께 논의해야 하는 일이다.
받아들이기
판단하고 구분짓는 것은
경계를 세우는 일이고 함부로 섞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인간이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통분모로 만났다 할 지라도 시간이 지날 수록 스며나오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일정 부분 견고한 경계를 허물고
상대방을 내 영역 안에 발 들이도록 허용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섞이는 지점에서 공감과 사랑이 싹트고
연결됨으로써 비로소 그 관계는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사랑을 전제로 한 더 많은 연결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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