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의 차이
p.12
콘스탄틴 레빈은 형을 해박한 지식과 교육을 겸비한, 고결이라는 말의 가장 높은 의미에 들어맞는,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한 활동력이 부여된 훌륭한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나이를 먹고 보다 가깝게 형을 알게 될수록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자기에게는 전혀 없다고 느껴왔던 이 만인의 행복에 이바지하는 활동력이라는 것이 실은 특출한 면모가 아니라 거꾸로 어떤 결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량이나 정직이나 고상한 욕구와 취미의 결함은 아니지만 생명력의 결함, '정'이라고 불리는 것의 결함, 인간으로 하여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자주 맞닥뜨리는 인생행로 가운데서 하나를 선택하여 거기에 전념하게 하는 충동의 결함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더욱더 자주 머리에 떠오르게 되었다.
레빈이 여태까지 알던 형 세르게이는 존경할만한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며칠동안 형제의 대화를 통해 드러난 세르게이는 레빈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형의 모습과 거리가 있었다. 어쩌면 레빈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형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레빈과는 다르게 선량함의 이미지를 소비할 뿐,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것이 아닌 그래야 하기 때문에 선량하게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레빈이 느끼는 농민에 대한 감정은 남달랐다.
레빈은 그 역시 농민의 일부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농민에게 혈족적인 애정을 품고 있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로 표현하는 것조차도 자신이 직접 목격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빼앗는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자연을 사랑했다.
풀베기
p.37
그리고 그가 하고 있는 일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게 하는 그 무아의 순간이 더욱 자주 찾아왔다.
자신이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일을 한다는 건 큰 도전이다.
농민들은 정확하고 한결같은 동작으로 장난이라도 하는 것처럼 쉽게 풀베기를 했지만, 그때까지 변변하게 풀한번 베어 보지 못한 레빈으로서는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레빈은 농민들에게 질세라 열심히 그들을 따라 리듬에 맞춰 풀을 베어 나간다. 일은 익숙하지 않아 더욱 고통스러웠다.
어느 순간 레빈에게는 마치 낫이 저절로 풀을 베는 것과 같은 무아의 순간이 찾아온다.
시간이 가는 것도 모르고 풀을 베던 그 순간 레빈은 행복감을 느낀다.
레빈은 미숙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풀베기를 통해 '몸을 움직여 일을 한다는 것'의 감동과 환희를 느낀다.
'책꽃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르조 바사니 <금테 안경> (0) | 2019.09.23 |
---|---|
그렉 브레이든, <1700년 동안 숨겨진 절대 기도의 비밀 > (0) | 2019.07.16 |
톨스토이 < 안나 카레니나 > 3권 (0) | 2019.07.15 |
마샤 메데이로스 < 서서히 죽어 가는 사람 > (0) | 2019.07.09 |
라이너 쿤체 < 두 사람 > (0) | 2019.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