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영화를 봤다.
개봉한지 두달 가까이 지나서 본 소감은.
정.말.대.단.하.다.
였다.
오버하지 않고 전하고싶은 메시지를 따박따박 전하는 배우들과 감독의 연출력이 대단했고
끝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하는 탄탄한 스토리에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졌다.
우리나라 영화가 정말 많이 발전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니, 봉준호 감독의 천재성이려나?
개봉 전부터 호기심이 이는 포스터였다.
약간은 유명세가 잦아들고 난 뒤에 다행히도 천만 관객수에 일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시대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영화이다."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고 싶다."
- 봉준호-
이하 스포 대 방출
영화 줄거리
영화의 큰 얼개는 상류층인 박사장네와 하류층인 기택이네의 삶이다.
가족 모두가 백수인 기택네의 아들 기우는 친구의 소개로 박사장네 집에 고액과외 면접을 간다.
박사장의 부인 연교는 명문대 재학생임을 증명하는 위조문서만을 믿고 기우를 고용한다.
그리고는 기택네 가족 모두 차례차례 박사장네 집의 미술치료사로, 운전기사로, 가정부로 위장취업을 한다.
박사장네가 캠핑으로 집을 비운 사이 기택네 가족은 마치 박사장네 집이 자신의 집이 된듯 마음껏 누리고 즐긴다.
그순간 기택네의 계략으로 급작스럽게 쫓겨났던 가정부 문광이 갑자기 박사장네를 찾아온다.
사실 박사장네 지하실엔 아무도 모르게 문광의 남편 근세가 4년간 기생하고 있었다.
쫓겨난 문광이 기택네 가족에게 자신의 남편에게 몰래 먹을 것을 가져다주도록 부탁하는 과정에서 기택네의 사기행각이 드러나게 되고 기택네와 문광부부는 서로의 약점을 볼모삼아 격투를 벌인다. 그러다가 문광이 뇌진탕으로 사망하게 되고 근세는 기택에 의해 지하실에 갇힌다.
다음 날,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는 박사장네 부부는 아들의 생일파티를 위해 사람들을 초대한다.
지하실에 갇혀있던 근세를 혼자서 '처리'하려던 기우는 오히려 근세에게 공격을 받아 쓰러지고, 기택네에 대한 분노로 칼을 거머쥔 근세는 기정을 찌르며, 충숙은 그런 근세를 공격하고, 기택은 쓰러진 근세의 '냄새'를 역겨워하는 박사장의 심장을 찌른다.
살인자가 된 기택이 종적을 감추고 끔찍한 사건이 잊혀져갈 무렵 우연히 기우는 박사장네 집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지하에 갇혀 기생충처럼 살게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아버지의 메시지를 읽게되고, 기우는 언젠가 큰 부자가 되어 그 집을 사서 아버지를 구하는 꿈을 꾼다.
기생충의 사전적 의미
기생충 (寄生蟲) [기생충]
[명사]
1. 다른 동물체에 붙어서 양분을 빨아 먹고 사는 벌레.
2.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남에게 덧붙어서 살아가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선을 넘지 말라
박사장네는 기택네의 위조문서와 그럴듯한 언변에 속아 기택네를 '믿고' 고용한다.
박사장네로서는 기택네가 제공하고있는 노동이란게 언제든지 필요하면 대체가능한 것들이다. 따라서 서류라든가 하는 건 별로 박사장네에게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박사장네가 만족하느냐 아니냐일 뿐이다.
박사장은 가끔씩 '선'을 넘어오려는 기택의 행동이 불쾌하다. 가령, 기택의 '사모님 사랑하시죠?' 와 같은 멘트는 박사장이 같은 레벨의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기택이 해서는 안될 말이다. 자신이 구축한 고결한 세계를 하인들이 허락없이 함부로 드나드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냄새는 그런것 따윈 아랑곳없이...함부로 선을 넘는다.
선.
과거의 신분제 사회에서는 타고난 신분이라는 명확한 선으로 사람들의 계급이 구분되어 있었지만 이는 시민혁명으로 이미 오래전에 무너졌다. 그런데, 이 신분이라는 것이 겉으로 보기에는 사라진것같은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엄연히 돈으로, 학벌로, 지위로 그 명줄을 이어가고 있다. 새로운 신분사회이다. 그리고 그 피라미드의 아래에서 수많은 기택네와 문광부부가 엎치락뒷치락하며 살아가고 있다.
데칼코마니
봉준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기생충>의 원제는 '데칼코마니'가 될 뻔 했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주인공들의 역할이 겉모습만 다를 뿐 어딘가 모르게 서로서로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근세의 삶을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난 저정도까지 망가지진 않았어' 하는 기택의 경멸이 묻어나는 눈빛은 박사장의 눈빛과 닮아있다.
기택네는 어떻게 하든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면 그만이다. 그들에게 도덕이란 없다.
사채업자에게 쫒겨 숨어사는 문광과 근세부부의 삶은 매우 위선적이다.
두 가족 모두 어느정도의 교양과 지식을 갖춘 과거의 중산층이었고, 지금은 삶의 사다리 아래쪽에서 서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이전투구를 벌인다. 그 싸움에서 진 사람은 죽거나, 혹은 더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게 된다.
기생충 가족들간의 처참한 싸움을 끝내고 문광의 생사를 은폐한 채, 기택네는 홍수로 잠겨버린 자신의 집을 향해 끝도 없이 내려가고 또 내려간다. 유난히 길게 묘사된 기택네 가족의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은 더 낮은 곳으로 떨어져가는 기택네의 처지를 은유하는 멋진 장면이다. 이와는 상반되게 박사장네에게 폭우는 단지 공기를 깨끗하게 해주는 샤워와 같은 것일 뿐이고 조금 색다른 캠핑놀이의 배경이 될 뿐이다.
수석
더는 내려갈 곳이 없는 곳에서 부귀와 명예의 상징물인 수석이 떠오르고, 기우는 홀린듯이 그 돌로 문광부부의 존재를 은폐하려하지만 오히려 근세에게 역습을 당하고 만다.
이 수석은 '부귀와 명예가 삶을 더 낫게 해줄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실수를 해도 그것은 오히려 내게 불리한 상황을 가져다 줄 수도 있는 양날의 검'처럼 느껴진다.
냄새, 그리고 혐오
기택네 식구들은 박사장네를 완벽하게 속였다고 생각했지만 박사장의 아들은 기택이네 식구들에게서 똑같은 냄새가 난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냄새란 그런것이다.
내게서 나는 냄새를 나는 알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은 알아채는 것이다.
바꾸고 싶다고 해서 쉽게 바꿀 수도 없다.
냄새는 아무리 감추려해도 튀어나온 송곳처럼 자신을 드러내고야 만다.
기정은 알았다. 그들 자신에게서 나는 냄새는 '반지하의 냄새'였고, 하층민의 냄새였다는 것을.
숨어있던 기택의 냄새는 스멀스멀 박사장의 코를 자극한다. 박사장은 기택의 냄새를 경멸섞인 말투로 '지하철에서 나는 냄새'라 칭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기택의 기형적인 삶의 모습과 거리를 두며 철저히 관찰자의 태도를 견지해왔던 나에게 '너도 기택이와 똑같은 부류'라고 말하는 듯한 박사장의 이 발언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지하철은 나를 포함한 수없이 많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누군가의 삶의 냄새가 짙게 배어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근세만 없었더라면 기택네는, 스스로는 결코 알아채지 못하는 계층의 냄새를 입고 부자와의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선을 줄타기하면서 박사장네가 가진 부를 힐끔거리며 성실하고도 비굴하게 삶을 이어나갔을 것이다. 문광부부가 기택네를 만나기 전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기택은 그 '냄새'에 대한 박사장의 혐오에 일격을 가한다.
그의 일격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혐오에 대한 혐오이다.
기생
가장 먼저 기택네의 냄새가 서로 같음을 알아차린 사람은 박사장의 막내아들 다송이었다.
또 다송이는 근세가 보내는 모스부호를 목격했지만 근세에게 절박할 수 있는 상황에 그저 무관심할 뿐이다.
흥미있는 일이 아닌 이상, 다른 사람의 절박함 따위는 박사장네에게 아무 가치도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애써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의 중심에 박사장네에 기생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선을 그어놓고 넘어오지 말라고 했지만 정작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일들은 박사장네가 경멸하는 대체가능한 이들의 손에 달려있었다. 결국 그들의 삶은 서로가 서로에게 실타래처럼 얽혀서 떼어낼래야 떼어낼 수 없는 공생의 삶이다.
참으로 여운이 긴 영화이다.
찜찜하면서도 슬프고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인다.
봉준호 감독은 도발적으로 우리 대중의 삶이 기택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자본주의 사회의 승리자와 낙오자를 대비시켜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는 자본주의 현실의 허상과 무모함, 그리고 그에 따른 비극을 좀 알아차리라고 뒷통수를 세게 때리는듯 하다.
봉준호 감독의 다른 영화들을 다시 찬찬히 살펴봐야 하겠다.
2020.02.10 덧붙임
세상에...기생충이 2020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국제영화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무려 4개의 오스카상을 받았다!!
너무 궁금해서 실시간으로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보며 나도 모르게 꺅 소리를 질렀다...정말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봉준호감독의 감독상 수상소감은 감동 그 자체였다.
아직도 그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그는 모두의 사랑을 받아 마땅하다.
봉준호 포레버!!!
기생충을 몇 번이나 다시 보고 있다.
처음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많은 요소들과 느낌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의 영화는 은유로 범벅된 한 편의 장편시같다.
예술인에 대한 동경이 폭발하는 하루였다.
'영화, 음악, 전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이너마이트> 방탄소년단 커버곡 / One Voice Children's Choir (0) | 2020.11.02 |
---|---|
< CONNECT, BTS > 전시회 : 서울 DDP 2020.01.28 ~ 03.20 (1) | 2020.02.08 |
<데이비드 호크니> 전 : 서울 시립 미술관 2019.03.22 ~ 08.04 (0) | 2019.08.05 |
조성진 (0) | 2019.06.26 |
책 속의 음악: 헤르만 헤세 <데미안> (0) | 2019.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