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과 22명의 현대미술 작가들과의 협업으로 해외 5개국 도시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으로 화제가 된
<커넥트 BTS> 전시회에 다녀왔다.
티켓은 무료였고 운이 좋게도 당일 취소표를 예매할 수 있었다.
깜짝 선물로 토요일 오후에 아미인 딸과 함께 즐거운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고마운 일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모두가 몸살을 앓고 있는 이 때,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을 가도 되나...
나 뿐만 아니라 모두를 위해 조심을 해야 하는거니까. 마스크 쓰고 수시로 소독제를 이용하며, 전시만 보고 어서 집으로 돌아오기로 하고 남편과 딸과 함께 전시장으로 향했다.
DDP에 도착해 보니 주차장에서 전시장이 있는 M1으로 가는 동안 곳곳에 소독제가 놓여 있고 감염예방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온라인에서는 손소독제가 품절사태이고 흉흉한 유언비어가 난무하지만 실제로 공공장소에서 서로를 위한 예절은 잘 지켜지고 있는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모두들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우리 역시 관람 내내 마스크를 착용했다.
"나는 세계와 나를 창조한 그 위대한 예술가의 작업실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는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중에서 -
앤 베로니카 얀센스의 작품 <로즈>
전시관을 들어서자마자 텅 빈 방 안에 예쁜 분홍색 조명이 7각의 별처럼 들어있는 <로즈>라는 작품이 있었다.
나를 포함한 예닐곱의 무리가 방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자 스탭이 와서 들어가서 보시라고 얘기해준다.
실제 조명의 중간에 서서 하일라이트를 받는 느낌을 느껴보라고.
'아, 들어가도 되는 거였구나...'
항상 미술작품은 보호막에 가려져 한 겹 싸인 채로 멀리서 우러러 봐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있어서였을 것이다.
걸려있는 그림은 작가의 일방의 표현이고 그림과 나는 별개의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 이런 전시에서 관람객은 객이 아니라 작품 속에 섞여 주체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자유롭게 작품 안으로 들어가 함께 느끼며 혹은 만지면서 적극적으로 작품의 일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정적임에서 탈피한 현대미술의 다양한 시도가 얼마나 경쾌하고 신선한지!
왠지 내가 작가의 물감이나 작품의 재료가 된 듯 자유롭게 작품 안에서 유영하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작품은 고정되어있지 않고 관람객의 수만큼 다양한 작품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었다.
현대미술의 이름을 달고 있는 것이 모두 이런 것인가?
괜시리 가슴이 두근거렸다.
전시의 이름이 왜 커넥트 BTS인가.
무엇을 연결한다는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BTS 역시 팝아티스트로서 세상과 주변을 연결하고 싶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주류가 아닌 주변에서 시작하여 세상의 주류를 넘어 탑이 되어 있는 지금의 BTS가 왜 다시 변두리와의 소통을 시도하려는 것일까.
현대미술, 현대무용, 현대음악.
'현대'가 붙어있는 예술은 좀 어렵다. 보통 어렵다는 인식이 있는것 같다(나만 그런지도)
그런데 이번 전시를 보는 짧은 시간 내내
예술은 작가의 느낌을 형상화하는 작업이라는 느낌이 실감나게 들었다.
정형화된 액자 속 미술이 느낌을 박제해 놓은 것이라면 현대미술은 살아있는 느낌이다.
마치 작가가 내 옆에서 계속 설명을 하며 자신이 느낀것이 바로 이것이다라며 속삭이고 있는것 같다.
세상과의 소통.
그 도구가 다를 뿐, 언어도 책도 춤도 미술도 음악도 다 같다. 소통의 도구이다.
소통은 사랑에서 생겨나고 소통은 연결되려는 시도이므로,
이 전시의 이름처럼 커넥트 BTS는 자신의 음악세계 혹은 예술세계와 각각 분절된 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하려는 표현인것 같다.
그들의 앨범 이름처럼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솟아나는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세상과 연결된다...라면...
멋진 시도가 아닐 수 없다.
런던, 베를린, 부에노스아이레스, 서울, 뉴욕에서 각각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고
DDP전시장에는 각 도시에서 열리는 전시에 대해 간단한 소개부스가 진열되어 있었다. 모두 다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희망사항.
바닥은 거울로 되어 있고 관람객 역시 이 전시품의 일부가 된 것처럼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치마를 입고 오는 것은 곤란하겠다)
런던
부에노스 아이레스
베를린
서울
뉴욕
런던의 아미와 소통하며 영감을 얻어 제작했다는 강이연 작가의 <Beyond The Scene> 의 한 장면
예술가들은 행위를 펜으로 삼은 시인이다.
이들이 만들어 놓은 삶의 함축이 너무나 아름답다.
이 작품은 천에 드러나는 무용수들의 실루엣이 너무나 멋진 작품이다.
안타깝게도 바닥에 앉아 넋을 놓고 보느라 다른 사진이 없고
작품 중간에 파도치는 것 같은 장면만을 캡쳐했다.
이번 전시의 주인공 앤 베로니카 얀센스의 <그린, 옐로, 핑크>
10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마스크를 쓴 한 스탭이 이 작품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해준다.
<그린, 옐로, 핑크>작품의 공간 안에서 5분간 자유롭게 관람을 하면 된다고 했다.
차례가 되자 스탭들은 크린룸 같이 생긴 중간 구역에서 10명 인원수를 세어 작품 안으로 사람들을 풀어 놓았다.
갑자기 훅 쏟아지는 안개로 자욱한 내부공간은 정말 한 치 앞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자아를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라는 스탭의 말을 뒤로 하고 전진.
(카메라에 점박이 있는걸 발견!)
공기 사이사이를 뭔가가 빽빽하게 채운것 같은 밀도 높은 공간.
웅..하는 소리가 탁하게 들리는 것 같은데 답답한 느낌이다.
누군가와 부딪히는건 아닐까?
아. 다른 사람과 부딪히지 않도록 손을 뻗으면 되겠구나.
손을 뻗는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시야가 녹색에서 옅은 노랑과 분홍으로 바뀐다.
다시 손을 뻗어본다.
뭔가 아련하다.
코로나 바이러스때문에 빚어진 웃픈 사진.
황사철 길거리 사진같다.
더이상 내게 오지 말라고 경고하는 손짓 같기도 하고.
딸랑딸랑 종소리가 울리고 스탭이 다시 인원수를 체크한 후 작품을 나왔다.
자신을 대면하기 위한 시간이라기에는 5분이 너무나 짧게 느껴졌다.
하지만 강렬한 경험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새로운 폰트도 만들었다고 하는데,
낱글자의 독립적인 마감보다 연결이 만들어내는 사이 공간에 주목을 했다고 한다.
글자마다 뭔가 이야기를 담고 있는것만 같은 귀여운 폰트다.
작은 전시였지만 깊은 울림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고 아름답고 매혹적이었다.
나같은 현대미술 문외한을 끌어들이는데 BTS가 한 몫을 한 것이다.
대중성을 가진다는게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번 기회가 현대미술에 대한 대중성을 확보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해도 벌써 또 다른 전시가 없나 기대를 하게 되니 말이다.
단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예약이 꽉 차서 또 보기가 힘들다는것.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없다는 것.
그만큼 좋은 전시였다는 뜻이다.
BTS가 이번 전시를 후원했다고 들었다.
그 선한 영향력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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