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겨진 활
활을 가진 자들은 필요한 때만 활을 당기는 법이오. 활을 늘 당긴 상태로 두면 활이 부러져 정작 활이 필요할 때는 쓸 수 없게 된다오. 사람의 일도 그와 같소. 인간도 늘 진지하기만 하고 하찮은 일로 전혀 긴장을 풀어주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미치거나 멍청해질 것이오. 나는 그것을 알기에 그 두 가지 모두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거요. (p.265)
아이귑토스의 왕 아마시스는 이른아침부터 장터가 붐빌 때까지는 열심히 업무처리를 하고 그 후로는 술을 마시고 빈둥거리며 놀았다.
아마시스의 친구들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에 아마시스는 활에 비유해서 중요한 일과 더불어 하찮은 일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운이 좋은 사람, 폴뤼크라테스
사모스의 참주 폴뤼크라테스는 매사에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의 시대에 사모스는 번영을 누렸다.
엄청난 규모의 수로터널과 방파제를 쌓았고, 모두가 우러러보는 헤라신전을 지었다.
친구인 아마시스는 폴뤼크라테스에게 충고한다. 행운이 계속되면 언젠가 불행이 닥쳐온다고, 그러니 스스로 행운을 버려서 불행을 막으라고 말이다.
"아마시스가 폴뤼크라테스에게 말합니다. 동맹을 맺은 친구가 번창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하지만 나는 신들께서 시기심이 많으시다는 것을 알기에, 그대의 잇단 큰 행운을 지켜보는 일이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나는 나 자신뿐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어떤 일은 성공하고 어떤 일은 실패하기를 바랍니다. 매사에 성공하는 것보다는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 낫기 때문입니다. 매사에 성공하는 사람치고 말로가 비참하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기에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대는 내 말대로 그대의 행복에 맞서 이런 조처를 취하십시오. 그것을 잃게 되면 마음이 가장 아플, 그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시고, 그것을 다시는 인간세상으로 돌아올 수 없는 곳에다 던져버리십시오. 그런 뒤에도 그대에게 행운과 불행이 교체되지 않는다면, 내가 말씀드린 방법으로 계속 치유해보도록 하십시오!" (p.298)
폴뤼크라테스는 일단 아마시스의 충고를 받아들여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인장반지를 바다에 던져버린다.
며칠 후 한 어부가 크고 잘생긴 물고기를 잡았다며 폴뤼크라테스에게 바치는데, 놀랍게도 이 물고기의 뱃속에는 폴뤼크라테스의 인장반지가 들어있었다. 폴뤼크라테스는 이 모든 일이 신의 뜻이라 생각하며 아마시스의 충고를 잊어버리고 만다.
이 일을 두고 아마시스는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정해진 운명에서 구할 수 없으며, 던져버린 것도 다시 찾을 만큼 매사에 운 좋은 폴뤼크라테스는 좋지 못한 최후를 맞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폴뤼크라테스가 끔찍한 재앙을 당할 때 친구인 그로 말미암아 마음의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폴뤼크라테스와의 동맹을 끊는다.
친한 친구가 재앙을 당할 경우 자신이 마음의 고통을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친구와 미리 동맹을 끊는다니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하지만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운명을 향해 불나방처럼 날아가는 폴뤼크라테스를 위해 아마시스가 할 수 있는 일은 더이상 없었다.
이후 폴뤼크라테스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로이테스의 계략에 빠져 아마시스의 예언대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행운이 계속되고 그것이 내것임을 의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스스로 불운을 체험하여 삶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참으로 불편하고 낯선 일일 것이다. 인간은 편리함에 쉽게 익숙해지고 어느덧 그 편리함의 덫에 갇혀 변화를 낯선 것으로, 낯선 것을 점점 더 큰 두려움으로 형성해나갈테니 말이다.
폴뤼크라테스의 이야기는 삶이 행운에 안주된 채 정체되어 있다면 반드시 변화를 일으켜 삶의 균형을 맞춰가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폴리크라테스 콤플렉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폴리크라테스가 친구인 이집트 왕의 충고를 따라, 그의 끝없는 성공에 질투한 신들을 달래고 다가올 파멸을 막기 위해 가장 소중한 물건인 자신의 반지를 자발적으로 바다에 버린 것과 같이 스스로에게 처벌을 가하는 현상을 ‘폴리크라테스 콤플렉스(Polycrates Complex)’라고 한다.
외부 고통이 적으면 자학하게 된다
인간은 한편으로 쾌락을 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고통을 추구하는 동물이다. 처벌로 인해 고통을 경험하면서 스스로의 죄책감에 대한 짐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들이 너무 순조롭게 진행되고 너무 운이 따르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인간은 불안을 느끼게 된다. 처벌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만심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고 내가 지나치게 잘난 척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자기 처벌과 반성의 욕구는 자만해지지 않기 위해서 균형을 잡아간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처벌 욕구가 지나쳐서 비정상적으로 표현되는 경우에 생긴다. 프로이드에 따르면 외부로부터 오는 고통이 처벌 욕구를 만족시키는데, 이것이 충분치 않을 때에는 스스로에게 고통을 가하며 신경증적 모습을 보이게 된다. 심해지게 되면 불안이나 두려움을 넘어서서 마비 증상도 동반될 수 있다. 자만하는 것, 자신의 행운에 만족하는 것은 자신의 성취에 심취하여 더 나아가지 않고 정지되어 있는 것이다. 반면, 처벌로 인한 고통은 괴롭기는 하지만 필연적으로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도전과 변화를 내포한다. 폴리크라테스 콤플렉스는 자만하지 말고 더 나은 모습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
*출처: <역사> 헤로도토스/천병희 역 - 도서출판 숲, 위키피디아, 폴리크라테스 콤플렉스
'책꽃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이너 쿤체 < 두 사람 > (0) | 2019.07.09 |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Metamorphoses) (0) | 2019.07.05 |
브라이언 와이스 <파워 오브 러브> (0) | 2019.07.03 |
헤르만 헤세 <데미안> (0) | 2019.07.02 |
헤로도토스 <역사> #1 (0) | 2019.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