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보아라, 님이여, 우리가 보았던 것을,
그토록 화창하고 아름답던 여름 아침:
오솔길 모퉁이 조약돌 깔린 자리 위에
드러누워 있던 끔찍한 시체,
음탕한 계집처럼 두 다리를 쳐들고,
독기를 뿜어내며 불타오르고,
태평하고 파렴치하게, 썩은
냄새 가득 풍기는 배때기를 벌리고 있었다.
태양은 이 썩은시체 위로 내리쬐고 있었다,
알맞게 굽기라도 하려는 듯,
위대한 ‘자연’이 한데 합쳐놓은 것을
백 갑절로 모두 되돌려주려는 듯;
하늘은 이 눈부신 해골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어나는 꽃이라도 바라보듯.
고약한 냄새 어찌나 지독하던지 당신은
풀 위에서 기절할 뻔했었지.
그 썩은 배때기 위로 파리떼는 윙윙거리고,
거기서 검은 구더기떼 기어나와,
걸쭉한 액체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살아있는 누더기를 타고,
그 모든 것이 물결처럼 밀려왔다 밀려나갔다 하고,
그 모든 것이 반짝반짝 솟아나오고 있었다;
시체는 희미한 바람에 부풀어 올라,
아직도 살아서 불어나는 듯했다.
그리고 세상은 기이한 음악소리를 내고 있었다,
흐르는 물처럼, 바람처럼,
또는 장단 맞춰 까불거리는 키 속에서
흔들리고 나뒹구는 곡식알처럼.
형상은 지워지고, 이제 한갓 사라진 꿈,
잊혀진 화포 위에
화가가 기억을 더듬어 완성하는
서서히 그려지는 하나의 소묘.
바위 뒤에서 초조한 암캐 한 마리
성난 눈으로 우리를 쏘아보고 있었다,
놓쳐버린 살점을 해골로부터
다시 뜯어낼 순간을 노리며,
-허나 언제인가는 당신도 닮게 되겠지,
이 오물, 이 지독한 부패물을,
내 눈의 별이여, 내 마음의 태양이여,
내 천사, 내 정열인 당신도!
그렇다! 당신도 그렇게 되겠지, 오 매력의 여왕이여,
종부성사 끝나고
당신도 만발한 꽃들과 풀 아래
해골 사이에서 곰팡이 슬 즈음이면,
그때엔, 오 나의 미녀여, 말하오,
당신을 핥으며 파먹을 구더기에게,
썩어문드러져도 내 사랑의 형태와 거룩한 본질을
내가 간직하고 있었다고!
*출처: 보들레르시집 <악의 꽃> /윤영애 옮김/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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