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416
처음 질베르트에게 있었던 것과 유사한 뭔가가 알베르틴에게도 있었다면, 이는 우리가 연이어 사랑하는 여인 사이에는 변화를 보이면서도 우리 기질의 고정된 성격에서 연유하는 어떤 유사성이 존재하기 떄문이다. 바로 이러한 기질이 우리와 상반되면서도 보완해 주는 여인을, 다시 말해 우리 감각을 충족하는 동시에 고통스럽게 하는 데 적합한 여인을 선택하고, 그렇지 못한 여인은 모두 제거하는 것이다. 이렇게 선택된 여인들은 우리 기질의 산물이자 이미지이며, 거꾸로 비친 상이자 우리 감성의 '음화'다. 그래서 소설가는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의 삶을 통해 그가 연이어 경험했던 사랑을 거의 흡사하게 정확히 그릴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모방한다기보다는 창조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인위적인 창조보다 새로운 진실을 암시하도록 마련된 반복에 더 많은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p419
프랑수아즈에게도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그녀만의 고유한 성격이 있었다. 그런데 인간이란 결코 곧게 난 길과 닮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또 우리가 지나가기 힘든 그렇게 기이하고도 피할 수 없는 우회로를 취하여 우리를 놀라게 한다. 내가 말을 하다가 매번 '제자리에 없는 모자'나, '앙드레 또는 알베르틴의 이름'과 같은 지점에 이를 때마다, 나는 프랑수아즈 때문에 접어든 그 엉뚱한 우회로에서 길을 헤매느라 매번 지체해야만 했다. ... 나는 이 정겨운 시골길의 여러 장소들 중 한 곳에서 프랑수아즈의 성격이라는 발부리에 걸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고 몹시 분개하면서 그 불평들을 들었다.
p421~424
나는 그런 곳에서 열리는 모임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고 수줍게 먼저 엘스티르에게 털어놓았다. "잘못 행각한 거네." 하고 엘스티르가 말했다. "아주 아름답고 신기한 풍경이야. 우선 그 특별한 존재인 기수가 그렇게도 많은 시선을 받으며 대기소 앞에서 화려한 조끼를 입고 침울한 잿빛 얼굴로 빙빙 돌며 뛰어오르는 말을 진정시키면서 말과 하나가 되는데, 기수의 이런 직업적인 동작을 추출하고, 경기장에서 기수가 만드는 얼룩을, 또 말의 털 색깔이 만드는 그 반짝이는 얼룩을 보여 주는 일이 얼마나 흥미로운지 모른다네! 그토록 많은 그림자와 반사광 앞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경마장의 거대한 빛 속에서 그 모든 사물들이 변형되는 모습이란, 오로지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라네! 여인들의 아름다움이야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첫날 모임은 황홀했네. 더없이 우아한 여인들이 습기를 머금은, 거의 네덜란드 풍 빛 아래 있었는데, 햇빛이 비치는데도 살을 에는 듯한 물의 냉기가 올라오는 게 느껴졌지. 아마도 바다의 습한 기운 탓이겠지만 그와 비슷한 빛 속에서, 마차를 타거나 눈에 쌍안경을 낀 여인들이 도착하는 모습은 이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었네. 아! 그 빛을 얼마나 그려 보고 싶었는지! 난 작업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혀 미친 듯이 경마장에서 돌아왔네!"
나는 옷을 멋있게 입은 여인들이 해상 경기장의 청록빛 속에 잠긴 요트경기나 스포츠 대회가, 베로네제나 카르파초가 그토록 즐겨 그렸던 축제만큼이나 현대 화가에게 흥미로운 주제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엘스티르가 말했다. "그림 속 축제의 배경인 도시 일부가 해상에 위치했다는 점에서 자네의 비교는 정확하다고 할 수 있네. 다만 당시 선박의 아름다움은 대부분 그 무게감이나 복잡함에 비례했지. 이곳에서처럼 수상 시합도 열렸는데, 카르파초가 <성녀 우르술라의 전설>에서 그렸듯이 대개는 어느 외교사절들을 영접하기 위해 행해졌네.
배들이 진홍색 새틴과 페르시아 융단으로 뒤덮인 도개교의 도움으로 부두에 정박했을 때는 화려한 버찌 빛 비단 옷과 초록빛 다마스 천으로 지은 옷을 입은 여인들이 배에 타고 있었고, 그 바로 옆 가지각색 대리석이 박힌 발코니에는 검정색 소매에 하얀색 천이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곳에 진주를 촘촘히 달거나 기퓌르로 장식한 옷차림 여인들이 구경하려고 기대고 있었네.
"베네치아 화가인 포르투니가 베네치아 직물 제조법의 비결을 발견했다고 하더군. 그래서 몇 해 안으로 우리는 예전에 베네치아 사람들이 귀족계급 여인을 위해 동방 무늬로 장식했던 옷과 똑같은 금은실로 수놓인 화려한 비단 옷을, 산책할 때나 특히 집에서 입게 될 걸세.
내가 베로네제 시대나 심지어 카르파초 시대의 유행보다 오늘날의 유행을 더 좋아한다는 걸 고백해야겠군. 우리가 타는 요트 중 가장 아름다운 건 단순하고도 밝은 회색빛 단색 요트로, 흐리고 푸르스름한 날에는 희미한 크림 빛으로 보이는 거라네. 요트 안은 작은 카페 같은 분위기를 풍겨야 해. 요트에 탄 여인들의 옷차림도 마찬가지지. 우아하게 보이는 것은 하얀빛 나는 단색 면포나 한랭사, 중국 비단, 리넨으로 만든 가벼운 옷으로, 태양과 푸른 바다에서는 흰 돛처럼 눈부시게 하얀빛을 띠지."
사치스러운 거라면 뮈든지 무익하다고 여기는 나와 달리 그에게 있어 아름다운 것은 '그와 똑같이 아름다운 걸 만들기 위해' 그림을 그리려는 욕망을 자극했다.
p.428
엘스티르는 마치 더위로 마비된 쪽배 안에서 몽상하는 이들처럼 아주 깊숙이 음미했으므로, 눈에 띄지 않은 미세한 썰물의 움직임이나 행복한 순간의 박동마저도 화폭에 옮겨 고정할 수 있었다.
피에트로 마스카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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