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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각각에는 가장 음량이 풍부한 악기보다 더 많은 음이 담겨 있다. 그 음들을 한데 모으는 목소리의 배합은 무한히 다양한 인간의 개성만큼이나 고갈될 줄 모른다. 내가 한 여자 친구와 이야기할 때면, 그녀만의 독특하고도 유일한 그림은 얼굴 굴절과 마찬가지로 목소리 굴절에 의해서도 정교하게 그려져 강제로 내게 부과되었고, 나는 이 얼굴과 목소리라는 두 광경이 각기 저마다의 도면에 동일한 현실을 표현한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목소리 선 역시 얼굴 선과 마찬가지로 아직은 결정적으로 고정되지 않았다. 목소리가 변하듯 얼굴도 계속해서 변해 가리라.
소녀들의 재잘거림에는 성숙한 여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어떤 음색이 있었다. 그리고 소녀들은 이런 다양한 소리를 내는 악기들을, 마치 벨리니 그림에 나오는 작은 천사 음악가들처럼, 입술로 열성을 다해 열정적으로 연주했는데, 이러한 열성과 열정이야말로 젊음의 독점적인 전유물이다.
또 소녀들의 말에는 여러 다른 음색이 담겨 있어, 마치 시(시)가 아직 음악과 구별되지 않고 여러 다른 음으로 낭송되던 고대 시절(시절)과도 비슷했다. 그럼에도 소녀들의 목소리는 이 작은 사람들 하나하나가 삶에 대해 취하는 태도를 벌써부터 분명히 드러냈다.
우리 얼굴 모습은 습관에 따라 결정적으로 굳은 움직임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은 폼페이의 재앙이나 님프의 변신처럼, 우리를 익숙한 움직임 속에 고정해 놓았다. 마찬가지로 억양 역시 삶에 대한 우리 철학을, 다시 말해 인간이 사물에 대해 줄곧 말해 온 내용을 담고 있다. 아마도 이런 특징은 소녀들뿐 아니라 그녀들의 부모에게도 속했으리라. 개인은 그보다 더 일반적인 것 안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부모는 얼굴과 목소리 모양이라는 일상적인 표시뿐 아니라 몇몇 말투나 집안의 상투적인 표현까지 물려주어, 결국 억양은 거의 무의식적이고 뿌리 깊은 삶에 대한 관점까지 담게 된다.
앙드레가 어느 장중한 곡을 빠르게 연주할 때면, 그녀의 목소리라는 악기의 페리고르 현은 남쪽 지방 출신의 순수함을 간직한 얼굴과도 잘 조화를 이루는, 노래 부르듯 울려 퍼지는 목소리를 내지 않고는 못 배겼다. 또, 로즈몽드의 빈번한 장난에 나타나는 '북쪽'출신 얼굴과 목소리라는 질료는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녀 고향의 억양과 잘 맞아떨어졌다. 이 시골과 시골 억양을 발음하는 소녀의 기질 사이에서, 나는 어떤 아름다운 대화를 인지했다. 대화이지 불협화음은 아니었다. 어떤 불협화음도 소녀와 소녀의 고향을 분리하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더 나아가 고장 그 자체다. 게다가 향토적인 질료를 사용하는 천재에게 이 질료가 미치는 반응은, 작품 개성을 악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작품에 많은 활력을 부여하여, 건축가의 작품이든 가구 제조인의 작품이든 음악가의 작품이든 간에, 예술가가 가진 개성의 가장 정교한 특징을 섬세하게 반영한다. 왜냐하면 건축가는 상리스 지반 맷돌이나 스트라스부르의 붉은색 사암토로 작업해야 했으며 가구 제조인은 물푸레나무 고유의 나뭇결을 존중했고, 음악가는 악보를 쓸 때 음역의 영역과 한계, 플루트 또는 비올라의 가능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빌파리지 부인이나 생루와 함께 있을 때는 , 내가 실제로 느끼는 기쁨보다 더 많은 기쁨을 그들에게 말로 증명해 보이려고 노력해서인지 헤어질 때면 몹시 피로했다. 그런데 반대로 소녀들 사이에 드러누워 있을 때 느끼는 충일감은, 인간 말의 빈약함과 부족함을 무한히 넘어서서 내 부동성과 침묵을 행복의 물결로 넘쳐흐르게 했고, 그 찰랑거리는 물결은 이 어린 장미꽃들 발밑에서 잦아들었다.
하루 종일 꽃을 재배하는 정원이나 과수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회복기 환자에게는 꽃향기와 과일 향기가 그 무위도식의 나날을 이루는 수많은 하찮은 것들 속에 깊숙이 스며들듯이, 내게서도 내 눈길이 소녀들에게서 찾는 그 빛깔과 향기의 감미로움이 드디어는 내 몸과 하나를 이루었다. 이렇게 해서 포도는 햇빛 아래서 더 단맛을 낸다. 그리고 그토록 단순한 놀이가 느리게 계속되면서, 미치 바닷가에 누워 소금기를 들이 마시며 살을 태우는 일밖에 다른 일은 하지 않는 이들처럼, 이 놀이는 내 마음속에 휴식과 행복한 미소를, 내 눈까지 와 닿는 아련한 현기증을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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