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54
어른이 되면 사회와 완전히 일치한 가운데 사물을 보다 실질적으로 보지만, 청소년기는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는 유일한 시기다.
p157
심술궂은 요정이 자신의 처음 모습을 벗어던지고 매혹적이고 우아한 모습으로 변신하듯이, 이 첫 번째 마귀 쫓기 의식이 지나자, 나는 이 거만한 인물이 내가 지금껏 만난 사람 중 가장 상냥하고 가장 남을 잘 배려하는 젊은이가 되어 가는 걸 보았다.
귀족이면서도 오만한 스포츠맨의 모습을 풍기는 이 젊은이는 오로지 정신적인 것, 특히 그의 고모할머니가 우습게 여기는 문학과 예술에서의 현대적인 움직임에 대해서만 존경과 호기심을 보였다. 한편 그는 그의 고모할머니가 사회주의자들의 연설이라고 부르는 것에 물들어 자신의 계급에 대해 깊은 모멸감을 품었고 니체와 프루동을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다시 말해 그는 남을 찬미하기에 급급하고 책 속에 파묻혀 고귀한 사상에만 관심을 갖는 '지식인들' 중 하나였다.생루에게서 드러난 이토록 추상적인 성향은 나의 일상적인 관심사와는 거리가 멀었고, 감동적으로 보이긴 했지만 약간은 따분했다. 저 유명한 마르상트 백작에 관한 일화로 가득한 회고록을 읽고 그의 부친이 어떤 분인지 알았을 때, 나는 이미 멀어진 시대의 특별한 멋과 몽상으로 가득한 정신으로 요약할 수 있는 마르상트 씨의 생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지만, 로베르 드 생루가 자신이 이런 사람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만족하지 않고, 또 부친의 싦이었던 그 한물간 소설로 날 안내해 주지 않고 대신 니체와 프루동을 좋아하는 데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고는 화가 났다.
그러나 이처럼 열린 정신의 마르상트 씨가 자신과 그렇게나 다른 아들을 존중한 데 비해, 예숙이나 삶의 몇몇 형식만이 가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 속하는 로베르 드 생루가 평생을 사냥과 승마로 보내고, 바그너의 음악에 하품하고 오펜바흐에게는 환호하는 아버지에 대해 약간은 다정하지만 조금은 경멸스러운 추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지극히 슬픈 일이었다. 생루는 지적인 가치가 어떤 미학적 형식의 신봉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 점을 이해할 정도로 총명하지는 못했다.
p160
그는 만사를 그 지성의 무게로만 판단했고, 자기가 경박하다고 판단하는 몇몇 작품들이 내게 주는 상상력의 매력도 인식하지 못했는데, 자기가 나보다 훨씬 열등하다고 믿는 그는 내가 그런 작품에 흥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놀라워했다.
*지식인(intellectuel)이란 단어는 1898년 드레퓌스 사건의 진상을 밝힌 피카르 중령을 구하기 위해, 작가들이나 학자들이 발표한(프루스트도 참가한) '지식인 선언문'에서 유래한다.
p.162
우리 두 사람은 영원히 좋은 친구가 되었다는 사실에 금방 동의했고, 그는 "우리의 우정"이란 말을 우리 밖에 존재하는 뭔가 '중요하고도' 감미로운 것인 양 발음했으며, 그의 삶에서 가장 큰 기쁨이라고-정부에 대한 사랑은 제쳐 놓고-일컬었다. 이 말이 날 조금은 슬프게 했는데 난 그의 말에 대답할 수 없어 당혹스러웠다. 왜냐하면 나는 그와 함께 있거나 이야기할 때 느낄 수 없던 행복감을 -아마 상대가 누구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친구 없이 나 홀로 있을 때 느꼈기 떄문이다. 때때로 뭔가 감미로운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몇몇 인상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걸 느꼈다. 그러나 누군가와 같이 있으면, 또는 어느 친구에게 말을 걸기만 하면, 내 정신은 급히 방향을 틀어 생각은 내가 아닌 상대방을 향했고, 또 생각이 이처럼 반대되는 방향을 따라가는 건 내게 어떤 기쁨도 되지 않았다. 한번은 생루 곁을 떠났을 때, 난 말의 도움을 받아 그와 함께 보냈던 혼란스러운 순간을 정리해 보려고 했다. 내게 좋은 친구가 있으며 좋은 친구란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아닌데 내가 그런 얻기 힘든 행복에 둘러싸였다고 느끼자, 그 순간 나는 자연스럽게 느껴지던 기쁨과는 정반대되는 기쁨을, 내면의 어둠 속에 감추어진 뭔가를 나 자신으로부터 뽑아 내어 빛으로 이끈 듯한 기쁨을 맛보았다. 내가 로베르 드 생루와 두세 시간 이야기하며 같이 보낼 때에도, 또 내가 한 말을 그가 칭찬해 줄 때에도, 난 내 방에 혼자 있지 않고 일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 일종의 가책이나 후회, 피로를 느꼈다. 그러나 인간의 지성은 자신을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고,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결국은 다른 사람에게서 인정받기를 원하며, 또 친구의 정신 속에 나에 대한 고귀한 관념을 심어 준 그 시간들을 헛되이 잃어버린 시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혼자 중얼거리자 내가 앞으로 행복해질 거라는 확신이 쉽게 들었으며 내가 그 행복을 느껴 보지 못했던 만큼 결코 다시는 빼앗기지 않기를 더 열렬히 소망하게 되었다.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 밖에 있는 소유물의 상실을 두려워하는데, 우리 마음이 아직 그걸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누구보다 우정의 미덕을 잘 수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내 몽상이 파헤치려고 애쓰는 한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거기서 나는 전 시대의 오래된 존재, 로베르가 그토록 닮고 싶어 하지 않았던 바로 그 귀족을 발견하고는 생생한 기쁨을, 우정에서 온 기쁨이 아니라 지적인 기쁨을 느꼈다.
그의 다정한 몸짓에...부에 대한 그의 취향 옆에 존속하는, 단지 친구들을 기쁘게 하려고 자기 부를 친구 발밑에 무심코 내던지는 그런 부에 대한 경멸을 느꼈다. 나는 거기서 특히 대귀족들이 품었던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확신 또는 환상을 보았으며...
p165
때때로 나는 내 친구를 하나의 예술품으로 여기면서, 다시 말해 그의 존재의 모든 부분이 달렸지만 그가 알지 못하는, 따라서 그의 고유한 장점이나 그가 그토록 중요성을 부여하는 지성과 도덕성이란 개인적 가치에 아무것도 덧붙여 주지 못하는 어떤 일반적인 관념에 따라 조화롭게 움직이는 놀이를 바라보면서 기쁨을 느끼는 자신을 자책하기도 했다.
'나'는 귀족의 전형적인 모습을 한 생루를 친구로서라기 보다는 다만 홀로 감상할 수 있는 지적유희가 가능한 아름다운 인형처럼 여기는 듯 하다.
p166
*콩브레의 사회학: 사람은 각자 자신이 태어난 카스트나 사회적 '계급'에 충실해야 하며, 그것을 벗어나는 사람은 사회적 낙오자로 간주된다. 이 낙오자가 바로 부르주아이면서도귀족 계급을 넘나든 이방인 스완이다.
*참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4> 마르셀 프루스트 저 / 김희영 역 / 민음사, 위키피디아,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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